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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송대의 문인증공(曾鞏)의 시를 엿보다 증공은 남풍선생으로 불렸다. 글은 소박하고 기교를 피우지 않았다. 담백하다.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지사과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었다. 역시 고문을 연구하였다. 어찌보면 증공의 시는 고문에 가장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화려하지 않고 꾸밈없이 소박하게 시를 썼으니 증공이야 말로 진정한 고문체를 사용했다 본다. 그런 이유로 제자들로 부터 시를 못쓴다는 평을 받았고 자신도 글을 못 쓴다고 한스러워 했다 그러나 증공의 문집 50권에 400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증공의 시를 엿 보자, 이미 우리는 , 은 이미 당송팔대가 증공편에 소개하였다. 하호에 이르다(至荷湖) 슬프게 우는 바람에 내 눈 거슬리고 애처롭게 울부짖는 원숭이 소리에 내 귀 슬프다 내가 물에 넘어지면 말도 물에 빠지고 내가 일어나면 옷은 .. 2024. 2. 25.
시간을 거슬러, 당대(唐代)자연주의시인 왕유의 시 감상 당나라의 자연주의 시의 거장 왕유(王維)의 시를 다시 감상해 보겠습니다. 향적사를 찾아가다(過香積寺) 향적사 어딘지 알지 못하여 구름 봉우리 속으로 몇 리나 들어간다 고목 우거져 사람 다니는 길 없건만 깊은 산 속 어딘가의 종소리 샘물 소리 가파른 바위에서 흐느끼고 햇살은 푸른 소나무를 차갑게 비치고 있네 해질녘 고요한 연못 굽이에 앉아 편안히 참선하며 잡념을 걷어 낸다네 향적사는 장안 남쪽의 종남산에 있는 절이다. 앞서의 글에서 올린 바와 같이 종남산은 중국 진령산맥의 여러 산 중 하나이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으니 빛은 우거진 나무 사이로 흘러든다. 작가 왕유가 아내와 사별하고 별장을 지어 머물렀던 곳이 종남산이다. 시에서 나온 것처럼 종남산에 있는 향적사를 찾아 가는데 초행에 어디있는지 알 못한다 .. 2024. 2. 24.
시간을 거슬러 자연주의 시인 왕유(王維)를 만나다 왕유(701년~761년)는 당나라 시인으로 이백(701년~762년)과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자연주의시파의 거두이다. 왕유는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부른다. 이백(李白)과는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맹호연(孟浩然)보다 12년 늦게 태어났다. 9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고 [낙양여아행(洛陽女兒行)] 은 16세에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생각하다 (九月九日憧山洞兄弟)] 는 17세 때, [도원행(桃源行)]은 19세 때의 작품이라 한다. 21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20여 년간 관직에 몸담아 비교적 평온하게 지내다가 때 잡혀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우 왕진의 도움으로 좌천된 것으로 감면받았다 이때부터 왕유는 불교를 믿게 되었고 이후 43세부터 58세까지 은둔기에 들어갔다. 이 시기의 왕유의 시는 자연을 벗 삼.. 2024. 2. 22.
당송팔대가 유종원의 시의 세계 유종원은 당대의 시인이다. 조상이 하동사람으로 별호로 하동선생(河東先生)으로 불리워졌다. 유종원은 총명하여 어린나이에 향시, 진사시를 모두 합격하였다. 그리고 30세에 감찰어사가 되었다. 유종원은 포용력이 있고 유연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말이다, 불교든 도교든 사람을 이롭게 바르게 하는 것이면 다 좋다는 것이다. 유교만을 고집하였든 한유와는 많이 달랐다. 유종원은 개혁정치의 희생양으로 영주사마로 좌천되고 다시 유주자사로 옮기었다. 유주자사로 있을 때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종원은 이후 중앙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지방관으로 전전하다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현존하는 시는146수이며 그의 문집인 에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장안과 영주지방에서 지은 것으로 양분된다. 눈 내리는 강 온 산에 새 날지 않고 온.. 2024.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