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원은 당대의 시인이다. 조상이 하동사람으로 별호로 하동선생(河東先生)으로 불리워졌다.
유종원은 총명하여 어린나이에 향시, 진사시를 모두 합격하였다.
그리고 30세에 감찰어사가 되었다. 유종원은 포용력이 있고 유연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말이다, 불교든 도교든 사람을 이롭게 바르게 하는 것이면 다 좋다는 것이다.
유교만을 고집하였든 한유와는 많이 달랐다.
유종원은 개혁정치의 희생양으로 영주사마로 좌천되고 다시 유주자사로 옮기었다.
유주자사로 있을 때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종원은 이후 중앙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지방관으로 전전하다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현존하는 시는146수이며 그의 문집인 <유하동집(柳河東集)>에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장안과 영주지방에서 지은 것으로 양분된다.
눈 내리는 강 <강설(江雪)>
온 산에 새 날지 않고
온 강에 사람 발자취 없는데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이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하노라
이 시는 송대의 범희문이 극찬한 시이다
'당대의 오언절구 중 유종원의 이 시를 제외하고는 뛰어난 작품이 거의 없다'
고 하였다. 여기서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는 바로 은거하는 유종원,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늙은어부(漁翁)
늙은 어부는 밤이 되면 서쪽 바위 곁에서 자고
새벽에는 맑은 상강 물을 길어 대나무 태워 아침 밥을 짓는다
물안개 사라지고 해 솟으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노 젓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산수는 짙푸르다.
고개 돌려 하늘 끝 바라보니 흐르는 강물 한복판이고
바위 위로 무심한 구름만 오간다
이 시는 유종원이 귀향지 영주에서 지은시이다
늙은 어부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것이고 정치적 좌절과 자신의 입지를 자연에 이입했다.
즉 자신의 입지와는 상관없이 지사로서 맑은 상강에 밥을 지어도 만족한 삶을 표현하였다
남쪽 계곡에서 시를 짓다(南磵中題)
가을 기운이 남쪽 계곡에 엉겨 있는데
나 혼자 정오까지 놀았다
회오리바람 한 번 일어나니 쓸쓸하고
숲의 그림자 오랫동안 들쭉날쭉한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에 충족함을 느꼈더니
점점 더 친해지니 피곤함도 잊어버렸다
무리를 떠난 새는 깊은 계곡 사이에서 울고
차가운 물풀은 물 무늬를 그리며 춤을 춘다
장안을 떠나 혼은 이미 멀리 있는데
그리운 임 생각에 부질없이 눈물 흘린다
고독한 삶이라 마음이 쉽게 동하고
길을 잃은지라 마음에 맞는 일 또한 드물다
이 삭막함은 결국 무엇인가
배회하면서 스스로 알 뿐
누가 뒤에 이곳에 와서
이 내 마음과 꼭같이 할는지
이 시는 왕숙문등과 계혁에 참여하였다가 함께한 일부는 죽고 유종원은 영주사마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시다.
남간은 유랑한 후에 지은 시이지만 상심한 마음에 실의에 빠져 지은시이다.
누가 뒤에 이곳에 와서 이 내마음과 꼭같지 않을까로 자연이 좋아도 버려진 것같은
마음은 꼭같다는 것이다.
유종원의 시를 여럿이 있으나 그중에서 유하동집에 수록 된 것으로 영주사마시절 시 한 수와
좌천되어 영주부임시의 심정을 담은 시이다.
부족하나마 당시(唐詩)를 좋아하고 당송팔대가의 시를 알고자 하시는 분을 위하여 짧게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