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동파의 시와 업적

by 청송백학 2024. 1. 6.

소식은 당송팔대가의 한 명으로 한 집안에서 3명이 문인으로 등재되었다

부친소순, 소식,동생소철이 당송팔대가에 속한다

당송팔대가는 당대와 송대에 걸쳐 뛰어난 문인 8명을 말한다.

당대의 시인들 중 시선이백, 시성두보, 왕유, 맹호연,백거이, 이상언 등의 많은 문인이 있지만,

당송팔대가에 속하진 않았다.

당송팔대가에 속한 문인으로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증공, 왕안석이 있다.

한유, 유종원은 당대의 문인이다.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증공, 왕안석은 송대의 문인이다

당대는 시문학이 발달하여 위에 거론한 외에도 뛰어난 문인이 많다.

그러나 송대는 시와 문장가들이 많았다.

문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는 북송시대이다.

송대는 북송시대와 남송시대로 구분한다. 처음 송나라를 건립하여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를

북송시대라 하고 북쪽 오랑캐의 침략으로 남쪽으로 수도를 옮긴 때부터 국가가 망할 때까지를

남송시대로 구분한다.

3명의 황제가 바뀌는 동안 중용과 유배를 거듭하며 지방관으로 재임하며 어느 시류에도 속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이기도 하다.

소식은 시인이자 문장가이며 문필가이며 서예가이기도 했다.

소식의 문장은 황제에게 상소의 글을 올린 상소문에도 그의 문장력이 발휘되었다.

비록 뜻을 이루었든 아니든 뛰어난 문장가이다.

서예에도 뛰어나 당시대의 제일로 평가받아 미불, 황정견, 채경과 함께 북송 4대 서예가로 불렸다

처음은 [난징서]를 배우고 안진경의 서예를 따랐으나 후일 모방배척하고 자신만의 일가를 이루었다.

당시송사란 말이 있듯이 당대에는 서정적인 시가 뛰어났다. 그러나 소식의 시는 철학적인 요소가 많았고 새로운

시의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사(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적벽부]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또한 소식의 시풍과 글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고려시대 이규보 등도 소동파의 시를 좋아하였다

이규보는 "학자들이 과거공부할 때는 풍월에 눈돌릴 틈이 없다가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면서

소동파의 시에 푹 빠져버린다"라고 하였다.

소식은 지방관으로 재임 중에 지방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노력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치수사업이었다. 장강은 홍수가 잦아  장강의 물길만 잡아도 몇 개의 현이 생긴다.

제방이 무너지면 여러 개의 현과 농경지가 사라지고 이재민이 발생하기 때문에 치수사업은 중요한 것이었다,

소동파의 시를 감상해 본다. 

봄밤은 항주 총관으로 재임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봄밤(春夜)


봄밤 일각의 값어치 천금인데

꽃에는 맑은 향기 있고 달에는 그늘이 있다

누각 위의 노랫소리 피리소리 아련한데

뜰에는 그네가 내려진 채 밤만 깊어 간다.


서림사 벽에 쓰다(題西林壁)


비스듬히 보면 산마루 되고 길에서 보면 봉우리가 되어

멀고 가깝고 높고 낮아서 각기 다르네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

단지 내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네

이 시는 황주의유배 생활에서 풀려나 동생 소철이 머물고 있는 강서성 균주로
향하는 도중에 지나게 된 여산의 서림에서 지은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