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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소동파의 시

by 청송백학 2024. 1. 5.

 

 이  름 소 식 (蘇軾)              동  생   소 철(蘇轍)

시  호   문충(文忠)                생  사   1037년~1101년

호        동파(東坡)                시  대   북송시대. 송신종,철종,휘종

부  친    소순(蘇洵)               관  직   최종 태사(太史) 사후추종

  사진출처:조선일보                   출  생   사천성 미산

             

 1. 개 요

소식은 북송시대의 문인집안 출신으로 시인이자 문인. 학자. 정치가 이다.

소식은 북송시대의 사람으로 송나라가 가장 번창 할 때 살았다.

북송시대 송신종. 철종. 희종시대를 살았다.

자는 자첨   , 호는 동파로 동파거사 또는 소씨성을 붙여 소동파로 불리었다. 

부친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다. 송대의 세사람이 모두 당송팔대가에 이름을 올렸다

2. 생애

소식은 22세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모친의 상을 치런 후 상경하였으나 곧이어 아내와 부친소순의 상을

치러야 했다. 다시 낙향을 하였다.

과거 합격 당시에 장원의 문장력을 가졌으나 당대 최고의 문인인 구양수가 감독관이었기에 글이 훌륭하였지만

부정의혹을 막기 위하여 차석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3정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33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입문하였다 이때는 송신종의 시대로

왕안석의 신법이 태동을 하던 시기였다.

조정이 왕안석의 신법운동으로 시끄러웠던 때였다. 신법세력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위선과 속됨 때문에 왕안석

본인에게도 의심을 품고 있었고, 급격한 개혁은 오히려 조정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반적으로 소식을구법당으로 보았지만, 소식은 구법당의 의견에도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소수파였다.

실제로 구법당이 신법을 일괄적으로 폐지하려 하자, 그는 일부 법은 존속시 킬 것을 주장하였다.

소식은 자신의 문장력을 총 동원하여 상소를 여러번 하여 황제를 설득하려 하였다.

소식의 상소문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소식은 지방관으로 발령받아 오랫동안 지방을 전전하였다.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각부임지에서 백성들을 위한 여러정책을 시행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임안(남송의 수도, 

지금의 항저우)으로 가서 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임안을 더욱 발전 시켰다.

동파육에 대한 고사도 임안에 부임시기에 만들어 졌다.

1079년 지방의 실태를 올린 상소가 신법당 일파의 눈에 거슬려 파직당하고 문초까지 받았으나 태조의 유훈으로

목숨은 건져 유배형을 당했다. 소식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신선사상(도교)에 심취했다고 한다.

신종의 사후 구법당이 집권하면서 소식은 정계에 복귀하여 예부상서를 지냈으나 신법의 유효성에는 상관없이

권력의 빌미로 만 이용하는 조정의 상황에 환멸을 느꼈다.

특히 당시 세를 불리던 성리학자들과 사이가 나빠져 또 귀향을 당했다.

후일 이러한 사실과 상관없이 성리학을 숭상하던 이들도 소식의 시를 추앙하였다.

이때 소식이 유배간 곳이 해남인데 소식덕분에 해남에 학문이 전해졌으며 이전에는 해남출신이 과거에 응시한

적이 없었지만 소식이 유배간 이후에 소식이 가르친 제자들이 해남 최초로 과거에 급제자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뒤 송휘종이 즉위하면서 사면되어 상경하던 중에 병으로 객사 하였다.

소식 사후 26년 뒤, 송 고종은  소식을 태사(太師)로 추종하였으며 송 효종시기에 소식을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작품

처음해남에 가다를 비롯하여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 서화 능했으며 정치에도 애민정신으로 임했다

먼저 처음 <해남에 가다>를 올린다.

이는 소식이 유배간 곳에서 쓴 시다. 소식의 비애를 알 수 있다.

해남에 가다
스스로 평생 생계에 허둥 댄 걸 비웃나니
自笑平生爲口忙

늙어서 하는 일도 황당하게 바뀌었네
老來事業轉荒唐

성곽을 싸고 흐르는 장강에서는 물고기의 맛을 알고
長江繞郭知魚美

아름다운 대나무가 연이은 산에 죽순향을 느낀다
好竹連山覺筍香

쫒겨난 나그네는 원외랑에 놓임을 탓하지 않고
遂客不妨員外置

시인의 반열에서 수조랑이 되련다.
詩人例作水曹郞

단지 부끄럽게도 터럭만 한 일도 돕지 못하면서
無補絲毫事

도리어 관가의 술자루를 축내고 있구나
尙費官家壓酒囊


 송시 소식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