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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시인 소순흠(蘇舜欽)

by 청송백학 2024. 3. 11.

소순흠(1008년~1048년)은 재주(梓州) 동산(銅山 : 사천성 동강현)에서 출생 증조부 때 

개봉(開封)으로 이주하였으므로 개봉사람이라고도 한다

자는 자미(子美)이다. 조부는 참지정사를 지낸 소역간(蘇易簡 : 975년~995년)이다

소순흠은 진종시절 재상을 지낸 왕차(王且)의 외손자이며 인종때 재상을 지낸 두연(杜衍)

의 사위다, 북송시절 진종(眞宗), 인종(仁宗)시대에 걸쳐 관리로지냈으며 명문가의 자제다

처음은 부친 옆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경우원년(1034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송대 시단(詩壇) 형성의 공로자이며 소순흠의 시는 233수이며, 그중 고체시는 100수, 

근체시가 123수이다.

「고체시라함은 고문체시로 시작이 산문과 같이 자유로운 시이다.

반대로 근체시는 경직된형식의 시로 시의 압운과 운율을 따지고 음의 높낮이를 중요시 하는 

규격화 된시로 율시, 절구, 배열을 따져 짓는 시로 5언, 7언 절구와 율시 등으로 구성되어

변려체의 형식을 갖춘 시이다」

그의 시풍은 당대의 정치와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한 사회시와 자연경관의 묘사를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비유한 서정시로 나타냈다.

손순흠의 시 2수를 올려 본다

갓 갠 날 창랑정에서 노닐다(初晴遊滄浪亭)

밤비가 아침까지 이어지더니 봄물이 불었고

아리따운 구름은 짙어졌다 따스해지면 흐림과 갬을 희롱한다

주렴은 비고 햇빛 엷으며 꽃과 대나무 고요한데

때때로 젖먹이 비둘기들이 서로 마주하고 운다

 

소순흠이 이 시를 지을 때는 관직을 떠나 소주(蘇州)에 1년여 동안 은둔생활을 하던 당시에 

청랑정을  짓고, 지은 시이다 관료들은 관직을 떠나 은둔생활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탄핵을 당하여 좌천되거나 스스로 관직을 에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며 자연에 묻혀 자신의

신세와 심정을 자연에 이입시켜 시를 짓는 시작(詩作)을 한다. 이때 많은 작품들을 남긴다.

그냥 읽어보면 소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노래한 것 같으나 3연, 4연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

를 빗대어 쓴 시이다.

여름날의 느낌(夏意)

딸린 정원 깊숙하고 여름 대자리 맑은데

석류꽃이 활짝 피어 주렴에 더욱 밝게 비치네

나무 그늘이 땅에 가득한데 해는 정오이고

꿈에서 깨니 흐르는 듯한 앵무새 소리가 때맞춰 나네

 

이시에는 한 여름의 정취를 노래한 시이다

1.2구는 그저 단순하게 한여름의 정원의 풍경을 그렸다.

여름날 붉은 석류꽃이 시원한 발에 비치고 시인은 정오이나 나무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다 깨어난다. 담백하면서 아무런 근심없는 시인의 마음이다.